아이작 뉴턴
아이작 뉴턴(영어: Sir Isaac Newton, 1642년 12월 25일~1727년 3월 20일, 율리우스력)은 영국의 박식가로서,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며 과학 혁명의 중심 인물로 널리 평가되는 인물이다. 1687년에 초판이 간행된 그의 저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æ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는 운동 법칙과 만유인력 법칙을 정식화함으로써 고전 역학의 토대를 놓았다. 뉴턴은 광학 분야에서도 획기적인 기여를 남겼으며,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와 더불어 미적분학 창시자로 인정받았고, 왕립 조폐국 국장과 왕립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그의 업적은 천상과 지상의 물리학을 하나의 수학적 틀로 통합하여, 이후 2세기 이상 서구 사상을 지배하는 자연과학의 패러다임을 확립했다.
초기 생애와 교육
아이작 뉴턴은 1642년 성탄절(그레고리력으로 1643년 1월 4일)에 잉글랜드 링컨셔 콜스터워스 인근 울스소프의 장원에서 미숙아로 태어났다. 아버지 역시 아이작 뉴턴이라는 이름을 지닌 그의 부친은 유력하지만 문자 해독이 어려운 농부로, 아들이 태어나기 3개월 전에 사망했다. 뉴턴이 세 살이 되던 해 어머니 한나 아이스코는 재혼하여 아들을 외할머니에게 맡겼으며, 전기 작가들은 이 경험이 뉴턴의 평생에 걸친 대인 관계에서의 불안감과 적대적 성향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한다.
뉴턴은 그랜섬의 킹스 스쿨에 다니면서 풍차와 해시계 모형을 제작하는 등 기계 공작에서 재능을 보였다. 1659년 두 번째 과부가 된 어머니가 그를 울스소프로 불러들여 가문의 농장을 경영하게 했으나, 농사에는 전혀 적임이 아니었던 그는 외삼촌 윌리엄 아이스코와 학교장의 개입으로 학교에 복학하게 되었다. 1661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에 서브시저(subsizar, 노동으로 학비를 충당하는 학생)로 입학했다.
케임브리지에서 뉴턴은 르네 데카르트, 요하네스 케플러,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 새로운 자연철학의 선구자들의 저작을 접했다. 1665년 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같은 해 대역병(페스트)으로 대학이 폐쇄되자 울스소프로 돌아가 2년을 보냈다. 이 시기는 훗날 그의 annus mirabilis(기적의 해)로 기려지는데, 이 기간 동안 그는 미분적분학의 기초(그가 "유율법(fluxions)"이라 불렀던 방법)를 닦고, 빛과 색의 본질에 관한 실험을 수행했으며, 훗날 만유인력 이론으로 완성될 분석을 착수했다. 정원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을 착안했다는 일화는 유명하지만 사실 여부는 확증되지 않았다.
과학적 업적
수학
뉴턴의 초기 주요 수학 업적은 이항정리에 관한 것으로, 그는 이를 비정수 지수와 음의 지수로까지 일반화했다. 이 토대 위에서 1665년부터 1666년경에 걸쳐 유율법을 발전시켰는데, 이는 순간 변화율과 곡선 아래의 면적을 계산하는 기법, 곧 미분적분학에 해당한다. 라이프니츠가 1670년대에 독자적으로 동등한 미적분학을 개발하고 먼저 출판하면서 유명한 미적분학 발명 우선권 논쟁이 벌어졌으나, 뉴턴의 방법은 그 자신의 물리학 연구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었다. 그 외에도 방정식의 수치 해법(뉴턴 방법), 3차 곡선의 분류, 보간법 이론 등에 기여했다.
광학
1666년부터 1672년 사이 뉴턴은 획기적인 광학 실험 일련을 수행했다. 유리 프리즘을 사용하여 백색광이 단순한 실체가 아니라 서로 다른 굴절각을 지닌 여러 색의 광선이 혼합된 이질적 복합체임을 입증했다. 이 발견은 색이 순수한 백색광의 변형이라는 당대의 아리스토텔레스적·데카르트적 통념을 반박한 것이었다. 뉴턴은 빛의 분산 성질 때문에 굴절 망원경이 본질적으로 색수차에 시달린다고 결론지었고, 이에 따라 렌즈 대신 곡면 거울을 사용하는 반사 망원경을 발명하여 1668년에 완성했다. 1672년 왕립학회에 자신의 광학 이론을 담은 논문을 보냈으나, 로버트 훅을 필두로 한 날카로운 비판에 직면했고, 이는 예민한 그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남겨 출판 기피 성향을 굳히는 요인이 되었다. 그의 광학 연구는 훗날 《광학》(Opticks, 1704년)으로 정리되었는데, 이 책은 후속 연구 방향을 제안하는 실험적 "질의(query)" 형식으로 유명하다.
역학과 만유인력
뉴턴의 대표작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는 에드먼드 핼리의 권유와 재정적 후원 아래 1687년에 간행되었다. 이 책에서 뉴턴은 운동 3법칙, 즉 관성의 법칙, 힘이 질량 곱하기 가속도와 같다는 법칙, 모든 작용에는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인 반작용이 존재한다는 법칙을 확립했다. 이 공리들과 더불어, 모든 두 물체는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힘으로 서로 끌어당긴다는 만유인력 법칙으로부터, 뉴턴은 케플러의 행성 운동 법칙을 유도하고 조석을 설명했으며, 분점의 세차운동을 규명하고 혜성의 궤적을 분석했다. 단일한 물리 법칙이 천체 현상과 지상 현상을 모두 지배한다는 것을 입증함으로써, 뉴턴은 하늘과 땅을 구분하던 고대 아리스토텔레스적 이분법을 타파하고 정성적 자연철학을 수학적·정량적 과학으로 대체했다.
말년의 경력
1690년대에 들어 뉴턴의 관심사는 점차 공직 활동, 성서 연대학, 연금술 쪽으로 옮겨갔다. 1696년 왕립 조폐국 감독관(워든)에 임명되었고 1699년에는 국장(마스터)으로 승진하여 런던으로 영구 이주했다. 재직 중 그는 1696년의 대규모 화폐 개주 사업을 감독했으며, 위조범들을 강렬한 추적 의지로 색출하여 조사와 심문의 캠페인을 벌였고, 죽을 때까지 조폐국을 능률적이고 엄격하게 운영했다. 1703년에는 왕립학회 회장으로 선출되어 사망할 때까지 그 자리를 유지하며 학회를 권위주의적으로 이끌었다. 1705년 여왕 앤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아 학문적 업적으로 이런 영예를 안은 최초의 과학자가 되었으나, 이 서훈은 과학만큼이나 정치 활동과 조폐국에서의 공로와도 연관된 것이었다.
신학과 연금술 연구
과학 연구와 병행하여 뉴턴은 대체로 비밀에 부쳐진 주제들에도 막대한 관심을 쏟았다. 그는 독실하지만 정통적이지 않은 신앙인으로 삼위일체 교리를 거부했는데, 이러한 입장(반삼위일체론)을 공개했다면 케임브리지의 교수직을 잃었을 것이었다. 그는 성서 해석, 예언, 연대학에 관해 광범위하게 저술했으며, 고대 신학을 통해 훗날 타락했다고 믿었던 순수한 지혜(prisca sapientia)를 회복하려 했다. 뉴턴은 또한 수십 년에 걸쳐 연금술 연구에 몰두하여 금속의 변성 실험에 관한 100만 단어가 넘는 실험 기록을 남겼다. 이러한 활동과 그의 과학 사이의 관계는 현대 학계에서 논쟁적 주제인데, 많은 역사학자들은 만유인력이든 연금술이든 자연 속에 숨겨진 힘을 추구했던 그의 탐구가 하나의 통합된 지적 프로그램에 속했다고 주장한다.
성격과 논쟁
뉴턴은 극비주의적이고 비판에 민감하며 우선권 논쟁에 쉽게 휘말리는 성격으로 악명이 높았다. 광학을 둘러싼 로버트 훅과의 불화, 그리고 훗날 중력의 제곱 반비례 법칙을 두고 벌어진 논쟁은 격렬하고 오래 지속되었다. 가장 유명한 논쟁은 미적분학의 발명을 둘러싼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와의 분쟁으로, 이는 영국 수학자들과 대륙 수학자들 사이의 민족주의적 대립으로 확전되었다. 뉴턴의 회장 재직 아래 있던 왕립학회는 조사를 거쳐 뉴턴의 우선권을 인정했는데, 그 보고서가 훗날 뉴턴 자신이 초안을 쓴 것으로 밝혀졌다. 이 분쟁으로 인해 18세기 영국 수학은 대륙의 발전으로부터 상대적으로 고립되는 결과를 낳았다. 뉴턴은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친밀한 벗도 많지 않았으며, 말년의 가장 가까운 동료로는 젊은 스위스 수학자 니콜라 파티오 드 뒤리에, 그리고 조폐국에서 그를 보좌하고 그의 생애를 회고록으로 남긴 조카딸의 남편 존 컨듀잇 등이 있다.
죽음과 유산
뉴턴은 1727년 3월 20일(구력) 런던 켄싱턴에서 수면 중에 세상을 떠났으며, 성대한 예식과 함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되었다. 그의 장례에는 최고위 정치인들과 자연철학자들이 참석했으며, 이 예식을 지켜본 볼테르는 잉글랜드가 한 수학자를 다른 나라들이 국왕을 예우하듯 경의를 표한다고 언급했다.
과학과 사상에 끼친 뉴턴의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역학과 만유인력을 종합한 그의 체계는 성공적인 과학 이론의 전형이 되었고, 절대적 시공간 속에서 물질이 결정론적 수학 법칙에 따라 운동하는 우주를 그리는 "뉴턴적 세계관"은 20세기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의 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물리학을 지배했다. 이러한 혁명 이후에도 뉴턴 역학은 일상 공학, 탄도학, 천체 항법에서 여전히 작동하는 틀로 남아 있다. 힘의 국제단위계(SI) 단위인 뉴턴(기호 N)을 비롯해 수많은 과학 기관, 학술상, 그리고 "뉴턴 유체"라는 수학 용어가 그를 기리기 위해 명명되었다. 시인 알렉산더 포프가 남긴 유명한 묘비명은 당대인들이 그의 업적을 평가한 격조를 잘 보여준다. "자연과 자연의 법칙은 어둠 속에 감추어져 있었다. 신이 말했다. 뉴턴이 있으라! 그러자 모든 것이 빛을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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